소개: 강남버그
강남만큼 ‘버그’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주류 사회로 진입하는 가장 안전하고 검증된 길을 제시(또는 강요)하는 곳, 강남은 어느 순간 지역을 넘어서 시스템이 됐다. 강남버그는 강남 자체가 대한민국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버그’라고 가정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명제로서 증명하는 것이 이 팀의 목적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사실 초복잡성의 시대에 단순히 ‘오류’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현상은 없다. 이 팀이 생각하는 버그는 오류라기보다는 예측 불가능성에 더 가깝다.[↓] 어떤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그널로서의 버그는 때로 그 시스템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다. 강남버그는 ‘강남’이라는 지역, 제도, 또는 현상을 상징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건드린다. 사교육, 부동산, 도시 개발이라는 핵심어들 사이로 경쟁, 계급, 욕망 같은 관련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팀의 태도에는 때로는 비판과 자조, 때로는 관조와 유머가 뒤섞이며 섣부른 판단을 적절히 차단한다.
#버그 #디버깅 #핵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그 프로그램이 수행해야 하는 기능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때, 개발자의 실수 등으로 프로그램이 의도치 않은 동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버그(bug)라고 합니다. 프로그래머는 버그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프로그램을 고치게 되는데 이렇게 프로그래머가 버그의 근본 원인을 찾고, 버그를 제거하는 과정을 디버깅(debugging)이라 합니다. 이때, 프로그래머의 능력으로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그것을 고치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예: 시간이나 인력이 부족) 근본 원인을 고치기 보단 일단 미봉책으로 버그가 보이는 현상만 대충 땜빵으로 고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핵(hack) 라고 합니다.
#돌이킬수없는핵 #돌이킬수없는버그
버그가 없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따라서 버그를 만드는 게 두려워서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주저한다면 경제적,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가 없습니다. 단, 비행기에 들어가는 제어장치와 같이 사람의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는 효율성을 포기하고 버그를 없애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특별한 상황입니다. 단순히 ‘핵과 버그 둘 중에 무엇이 더 위험성이 크다.’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핵도 버그도 둘 다 돌이킬 수 없다면 똑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인데요. 핵은 뭐가 되었든 이미 존재하는 버그(예상치 못한 현상)를 고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고치려는 버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물론 언젠가는 핵을 걷어내고 근본 원인을 찾아 올바르게 버그를 고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핵도 ‘돌이킬 수 없는 핵’을 만들어 두면 나중에 올바른 방법으로 다시 고칠 수 없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그래도 일단 눈에 보이는 문제는 고친 상황이라 아주 큰 문제라 할 순 없죠. 하지만 나중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예전에 만들어놓은 핵 때문에 그 새로운 문제를 고치는 게 너무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때가 바로 돌이킬 수 없는 버그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그와 반대로 ‘돌이킬 수 없는 버그’는 이미 고칠 수 없는 버그입니다. 하나의 버그를 수정하는 것이 이미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는 프로그램 안에서 또다른 치명적인 버그를 발생 시키거나 시스템 전체를 다시 디자인 해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 순간을 넘기는 핵 조차도 적용할 여지가 없기에 위험성이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현재 강남 도시 개발의 버그를 수정한다는 것은 단 한가지 요소를 고쳐서 해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현질
유저가 사용하는 핵은 버그를 고칠 때 사용하는 핵과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원하는걸 이루기 위해 ‘숏컷(Shot-cut)’, 즉 최단거리로 접근하는 것은 같지만 유저는 개인의 이득을,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의 원활한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다릅니다. 개인의 이득만을 위한 유저의 핵은 다른 유저들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프로그램 안으로 침투합니다. 하지만 요새는 유저의 핵과는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으로 예를 들면, 핵으로 무너지는 밸런스보다 현질(돈 내고 아이템 사는 등)로 무너지는 밸런스가 더 크다고 봅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돈을 쓰는 방법으로 승패를 좌우하고,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해킹기술로 승패를 좌우하는 겁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것은 게임 설계의 문제 입니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라면 핵 또는 현질로 인한 유저 수의 감소 효과는 미미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유저가 사용하는 핵은 프로그래머가 기술적으로 계속 방어해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질로 무너지게 된 게임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마치 돌이킬수 없는 버그와 같이.
강남버그는 하나의 영상 작품, 두 개의 참여형 프로젝트, 그리고 도시 개발 관련 리서치를 진행했다. 강남구 삼성동에 지어질 예정인 초고층 빌딩의 건설부지에서 드론 촬영을 통해 그 높이와 시점을 가늠해보려는 오르고 또 오르면은 15분짜리 3채널 영상이다. 촬영자의 시선과 드론의 화면이 교차되는 와중에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건물의 높이를 상상해보려는 노력은 수신 오류로 버벅대는 드론의 한계로 좌절되고, 난데없이 웅장한 음악과 이카루스 신화를 등장시키며 상승에의 근원적 욕망에 대해 언급하는 이 작품은 강남과 버그를 완벽하게 결합시킨다.
참여형 이벤트의 성격으로 기획된 강남버스와 천하제일 뎃생대회는 ‘코로나’라는 강력한 버그를 만나, 처음 계획과는 약간 다르게 진행됐다. 강남버스는 강남 지역을 일종의 관광 상품으로 상정해 이뤄지는 버스 투어 이벤트로, 운행 횟수를 최소화한 후 참여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영상물의 형태로 귀결됐다. 투어 가이드 역할을 하는 퍼포머들의 이야기들은 강남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인식을 복합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강남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가두는 것을 막는다.
천하제일 뎃생대회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휴관 때문에 시기와 장소, 규모가 모두 조정됐지만, 결과적으로는 2020년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면서 과거의 입시 제도를 상기시키는 독특한 분위기의 이벤트로 진화했다. 입시를 위해서는 더없이 중요하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하면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기술, 실제 석고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형 학원에서 가르치는 정형화된 이미지에 가깝게 그리기 위한 훈련으로서의 석고 소묘는 수단이 목적을 집어삼키면서 본질이 호도되는 대학 입시와 사교육 문제의 본질을 건드린다.
마취 강남은 병리학의 시선에서 강남의 도시 개발을 해석해보려는 시도다. [↓] 1960년대 이후부터 정부의 주도적인 계획에 의해 개발돼, 현재도 수많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로 지어지고 있는 강남은 한국의 어느 곳보다 현재성이 강조되는 곳이다. 강남을 기억과 통증, 의식이 소실된 채 다음 시술을 위해 마취된 상태의 도시로 바라보는 이 리서치 프로젝트는 건축을 중심으로 이곳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이
도시의 자부심은 그 안의 다양성과 이질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1980년 ‘오렌지족’으로 인해 형성된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인기는 2000년 초 신사동 가로수길로 옮겨간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가로수길로 밀려난 상인들이 빠르게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사동의 전성시대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경리단길 인기의 여파로 생겨난 이른바 ‘리단 현상’으로 이름에 ‘~리단’이 붙은 상업 거리들이 서울 곳곳에 생겨난 까닭이다. 지금은 다시 도산공원으로 그 흐름이 옮겨가는 듯하다. 에르메스 매장을 중심으로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이 들어선 터에 준지 플래그 숍,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퀸스마마 마켓 등이 들어서 콘텐츠가 풍성해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귀국한 유학생들에게 이 동네는 익숙하다. 자본이 순환하면서 동네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유착 1: 교회 대형화
1970년 유례없던 대형 아파트가 생겨나며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그리고 종교는 그 틈을 파고 들었다. 오늘날의 온라인 강의와 회의 전에 ‘비디오 선교’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교회가 지닌 파급력을 가늠할 수 있다.
#배양: 도산공원
1971년 4월 착공한 9,075평 규모의 도산공원은 1973년 11월 9일 문을 열었다. 이어 다음 날 당시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해와 미국에서 모셔온 부인의 유해를 함께 도산공원에 이장했다.
#증상
청담동 상권은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는 달리 지금까지 그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새롭게 단장한 버버리를 시작으로 루이 비통, 디오르 등 명품 브랜드들이 줄지어 새로운 플래그 숍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8위를 기록할 만큼 명품을 많이 소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 행태도 한몫했다. 이곳은 도쿄의 긴자, 아오야마에 버금가는 거리가 형성되면서 건축가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송은문화재단이 선택한 헤르조그 드 뮤론의 국내 첫 프로젝트도 공사가 한창이다.
#청담동주택단지
1970년 후반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한 청담동 일대가 빠르게 빌라촌으로 탈바꿈한 것은 토지주와 주택 소유자, 건설업체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단독 주택은 60~90평으로, 지은 지 2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따르나 땅값이 비싸 팔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건설업체에서 단독 주택을 6~10동씩 사들여 고급 빌라를 신축하면 사업성을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규 시장 개척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논현동 주택 단지와 달리 청담동은 인근에 지하철역이 없어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지역이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마이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재관류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은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 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연면적 16만 제곱미터로, 잠실 야구장과 맞먹는 규모다. 삼성역과 봉은사역 사이를 잇는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는 서울 지하철 2호선, 9호선 환승을 비롯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 노선과 C 노선이 정차하고 위례신사선과 향후 고속철도까지 정차할 예정인 초대형 복합 환승 센터다. 기존의 영동대로 공간은 도로를 지하화해 광장 형태로 조성할 계획이다. 지상 구간은 차 없는 도로가 되면서 녹지 광장으로 조성된다. 인근에 위치한 잠실동도 수혜가 기대된다. 종합운동장의 경우 스포츠, 문화, 상업, MICE 기능까지 갖춘 스포츠 문화 복합 단지로 재탄생하게 된다. 주경기장을 리모델링하고 야구장을 한강변으로 이동하는 등의 종합 운동장 재구성 사업이 계획돼 있다. 컨벤션과 호텔 같은 대규모 전시·숙박시설까지 갖춰 코엑스와 연계한 우리나라 MICE 산업의 중심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풍선확장술
척추 협착증에 대한 새 치료법으로 신진우(서울 아산병원 교수)에 의해 개발됐다. 이는 좁아진 척추 신경 통로에 가는 관(카테터)을 이용해 풍선을 직접 넣고 부풀려 여유 공간을 넓혀주는 시술법으로 난치성 척추 협착증 환자의 만성통증 감소 및기능을 개선했다. 환자의 증상이 실제 협착된 추간공의 여유 공간이 늘어나서인지 확인하기 위해 풍선확장시술 전·후 조영제를 투여해 삼차원 영상에서 조영제 확산 정도를 비교한 결과, 시술 전에 비해 추간 공내 확산 정도가 지름은 평균 28퍼센트, 부피는 평균 98퍼센트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존의 신경주사요법과 신경성형술은 만성 난치성 환자의 경우 그 개선에 한계가 있으며 기존의 물리적 유착 제거와 약물에 의한 유착 제거가 모두 가능하도록 고안됐다.
#이식
과감한 이식이 진행됐다. 강북에 위치한 명문고를 강남으로 이전시켰다. 1966년부터 1980년 사이 서울의 인구는 하루 900명씩 늘어났는데 이 시기 서울시 인구 증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유례가 없었다.
“1966~80년의 15년 동안 서울에는 정확히 489만 3,500명의 인구가 늘었다. 하루 평균 894명의 인구가 1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롭게 늘어난 셈이다. 매일 22동의 주택을 새로 지어야 하고, 50명씩 타는 버스가 18대씩 늘어나야 하고, 매일 268통의 수돗물이 더 생산 공급돼야 하고, 매일 1,340킬로그램의 쓰레기가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손정목, 서울 도시 계획 이야기 4, 290쪽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박정희 유신체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었다. 주택과 상하수도의 부족, 슬럼가의 확장과 교통 혼잡, 학교 과밀과 사회 범죄의 증가 등 많은 문제를 동반했다. 무엇보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유사 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인구를 억제하고, 강북에 밀집된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하는 방안이 절실하게 요구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3월 4일 서울시 연두순시에서 “인구 증가 없이 강북의 조밀 인구를 강남에 소산시키라”고 지시한 것은 이 같은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1972년 10월 28일 문교부가 서울 도심 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점차 심각해지는 도심 공해에서 학생들을 벗어나도록 하고, 서울 도심의 과밀 인구를 분산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고등학교가 이전 대상으로 지목된 이유는 당시 고등학교 진학률이 50퍼센트에 이르러 인구분산 효과가 컸고, 규모가 큰 대학보다는 서울 사대문 안에 밀집된 고등학교를 이전하는 게 용이했기 때문이다.
#테헤란로 ‘당당한 자본’
제5공화국 정권은 1986년 아시안 게임에 이어 1988년 올림픽 경기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자 종합적 통치 프로젝트로서 스포츠 메가 이벤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이를 뒷받침해준 것은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이었다. 이른바 ‘3저 호황’이라고 하는 이런 결정적 호조건으로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수출 주도형 경제 정책의 결과인 ‘한강의 기적’이 지속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개의 대규모 국제 행사를 치르기 위한 범국가적 준비가 시작됐다. 새롭게 조성된 잠실 지구로 접근하기 위한 교통로와 주변 도시경관 정비, 부족한 경기시설 확충 및 정비, 외국 선수단과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 마련 등 직접적인 관련 시설 준비뿐 아니라 광범위한 도시 미화와 경관 정비 작업이 이뤄졌다.
#절제
올림픽을 앞두고 관광호텔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984년 르네상스 호텔을 준공(삼부토건)한다. 역삼동에 들어선 이 호텔은 강남에 있던 유일한 대형 호텔로 주말 또는 휴가 기간에 다양한 이벤트를 유치하면서 사업 성과를 이룬다. 1990년 초반 잠실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강남에 많은 호텔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경쟁력을 잃어간다.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인근 유흥업소와 연계해 불법 행위를 함으로써 영업정지를 피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한 경영악화로 결국 폐업하고 2017년 철거하게 된다. [도면 보기]
#거부반응
도시 지형은 도시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 페리의 근린 주구론은 평지를 기반으로 한 계획이지만 강남은 경사 지형인 곳이 많다. 여기에 격자식 구조를 얹으니 그리드가 변형됐다. 또한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여러 이권이 개입하면서 사선형 그리드가 형성된다.
#유착 2: 우선미(우성-선경-미도)
슈퍼블록은 때로는 잘게 쪼개지는가 하면 목적에 의해 융합되기도 한다. 계획도시에서 순수한 조닝(Zoning, 도시 계획이나 건축 설계에서 공간을 사용 용도와 법적 규제에 따라 기능별로 나누어 배치하는 일.)은 의미가 없으며 도시적, 사회적, 기능적 혼합이 현대 도시론의 주된 부제로 부각된다. 2015년 은마아파트는 현상설계를 통해 유엔 스튜디오 안을 채택한다.
하지만 조합원 간 갈등으로 인해 원활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이안은 결국 실행되지 못한다. 여기에 자극받은 길 건너 우성-선경-미도(언론은 이를 ‘우선미’로 부른다.)는 조합을 형성해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이 ‘빅딜’은 오직 경제적 이해관계만으로 형성됐다. 청실아파트가 이미 ‘래미안 대치 팰리스’로 재탄생했고, 그 가격이 대치동 최고가를 연일 갱신 중이다.
#투석
양재천은 길이 18.5킬로미터로, 경기 과천시의 관악산에서 서울 서초구, 강남구를 가로질러 탄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한때 오염이 심했던 양재천은 이제 생태계가 되살아나 자연 하천으로 거듭났다.
‘1982년 초만 해도 논밭과 구릉지로 찬바람이 몰아치던 개포지구가 이제 시가지의 모습을 서서히 갖춰가고 있다. (중략) 지구를 동서로 가르고 흐르는 양재천이 쾌적한 시가지의 강변공원 역할도 할 수 있도록 가꿀 계획이다. 일곱 개의 교량이 놓이고 녹지 대를 두른 제방 도로가 양쪽으로 펼쳐지게 된다.’
경기 과천과 서울 남부를 지나는 양재천은 강남권 개발이라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한때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하는 ‘죽음의 하천’으로 곤욕을 치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강으로 직접 흘러들던 양재천은 1970년대 개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거치면서 탄천으로 합쳐지는 직선형 수로가 됐다. 하지만 양재천은 새로운 물길과 함께 죽음의 하천으로 변해갔다. 1995년 양재천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평균 15mg/l, 5급수의 수질이었다. 하천에 서식하는 어류가 한 마리도 없을 정도로 오염이 심각했다. 양재천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자연형 하천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복원 사업은 생물 서식처와 경관 등 하천의 모습을 본래 자연 상태에 가깝게 되돌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 결과 1995년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던 어류가 2001년에는 20여 종으로 늘어났고, 10종에 불과했던 조류도 42종으로 다양해졌다.
#변이 쿨데삭
1990년대부터 10여 년간 전국 평균 땅값 상승률을 기준으로 1년 사이에 땅값이 1억에서 2억으로 두 배가 된 유휴토지 또는 비업무용 토지는 3,875만 원의 토지 초과 이득세를 물어야 했다. 땅을 서둘러 개발하거나 처분하지 않는 한 세금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런 배경에 의해 급격히 건축된 다세대 주택으로 형성된 양재동의 지형도는 여느 쿨데삭과 달리 도로가 순환하지 못하고 마치 미로처럼 막힌 구조를 가진다.
#양재동 텍사스
“양재에는 아파트보다 100평짜리 주택지가 많았어요. 주택도 없는 빈 땅에 근린 생활 시설만 자꾸자꾸 들어 서는 거예요. 거기 땅을 강남 사는 사람들이 꽤 샀을 텐데. 아직은 거기까지 이사 와서 집짓고 살 사람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때 정부에서 세금을 물려요.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건물을 안 지으면 토지초과 이득세라고. 한두 번은 괜찮았는데, 매년 세금이 높아지고 그런 세금이 몇 년 쌓이니까 세금으로 낼 바엔 대충 작은 건물이라도 짓자고 해서 그렇게 우후죽순 상가 건물이 들어선 데가 지금의 양재동이에요. 근린 시설만 모인 참 이상한 동네라고 해서 ‘양재동 텍사스’라고 부르곤 했어요.”
#양재287.3
건축가 조성룡이 1991년 설계한 양재동 287.3은 준공 이후 2006년까지 조성룡 도시건축(UBAC) 사무실이자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건미준), 서울건축학교(SA)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렘 콜하스(OMA)와 가즈요 세즈마(SANAA)가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이곳에서 강연했다.
#후유증
서울시는 집단 이주 정책을 통해 무허가 정착지의 철거민을 비주거용 시 외곽 유휴 국공유지에 이주시켰다. 기존 무허가 정착지가 있던 지역이 도심지로 개발되면서 철거민들을 이주시킬 공간이 필요했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시 외곽의 빈 땅으로 이주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계획적으로 조성된 이주지로 거처를 옮겼음에도 해당 이주지의 재개발로 다시 밀려나는 경우도 있었다. 세입자로 있던 철거민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밀려났다. 재개발이라는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라 무허가 정착지가 도심에서 떨어진 시 외곽으로 축출(displacement or evictions)된 것이다(M. Huchzermeyer, 2006). 강남 일대에 형성된 무허가 정착지들 중 일부는 이처럼 개발로 시의 경계나 외곽으로 밀려나 형성된 경우다. 현재 강남구 개포동은 과거에 변두리 지역이었다. 기존 지역의 개발로 이곳으로 밀려난 빈민들이 무허가 정착지를 형성한 것과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다. 이곳이 지금의 ‘구룡마을’이다.